
글로벌 자율주행과 로봇 산업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영상 데이터 활용 규제를 완화하며 산업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겉으로 보면 기술 발전을 위한 필연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 변화의 배경에는 분명한 경고가 숨어 있다. 중국이 얼굴과 차량 번호판을 포함한 방대한 도시 데이터를 사실상 제약 없이 수집하며 자율주행 기술을 고속으로 진화시키는 현실이다. 문제는 이 경쟁이 단순한 기술 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안전과 신뢰, 그리고 주권적 데이터 관리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율주행과 스마트시티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대규모 도시를 실험장처럼 활용해 왔다. 우한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도로, 신호체계, 통신 인프라가 촘촘히 연결된 환경 속에서 차량과 로봇이 사람의 얼굴, 이동 경로, 차량 번호판을 포함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인공지능 학습에 즉각 활용되며, 기업과 공공 시스템 전반에 축적된다. 단기간에 수억, 수십억 킬로미터에 이르는 주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동의와 프라이버시 보호는 상대적으로 뒷순위로 밀려난다.
한국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대규모 데이터가 필수적이고, 과도한 규제는 기술 발전을 지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중국식 데이터 축적 모델을 그대로 경쟁 기준으로 삼는 순간, 한국 사회는 다른 종류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얼굴과 번호판은 단순한 영상 정보가 아니라 개인의 일상과 이동을 추적할 수 있는 핵심 식별 정보다. 이 정보가 무분별하게 수집·활용될 경우, 기술 발전의 이익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집중되는 반면, 사회 전체는 감시와 오남용의 위험을 떠안게 된다.
중국의 데이터 전략이 한국에 주는 위협은 기술 격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표준과 규범의 문제로 이어진다.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느슨해질수록, 프라이버시와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들은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중국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술 표준을 선점하면, 한국 기업들은 그 생태계에 종속될 가능성도 커진다. 이는 단순한 시장 경쟁을 넘어, 한국이 어떤 가치와 규칙을 중심으로 기술 사회를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이번에 논의된 ‘AI 특례’와 영상 데이터 활용 완화는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나온 현실적 대응이다. 산업 발전을 위해 일정 부분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규제 완화가 중국식 무제한 수집으로 향하는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 활용의 목적과 범위, 안전장치가 명확히 설계되지 않는다면, 기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사회적 신뢰를 희생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산업에도 독이 된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지점은 데이터가 안보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율주행 데이터에는 도로 구조, 교통 흐름, 도시의 취약 지점이 그대로 담긴다. 이러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거나 특정 국가의 기술 생태계에 흡수될 경우, 단순한 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차원의 위험으로 확대될 수 있다. 중국이 데이터 축적을 국가 전략과 결합해 온 점을 고려하면, 한국 역시 데이터 주권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사례는 ‘빠른 발전’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데이터가 통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 구조가 존재한다. 한국 사회가 그런 길을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한국의 강점은 신뢰와 투명성에 있다. 개인정보 보호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안전한 활용 모델을 정교하게 설계한다면,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단기적 데이터량 경쟁에서 밀리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신뢰 기반 기술이 더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규제 합리화 논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중국이 얼굴과 번호판까지 수집하며 기술을 밀어붙이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되, 그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경계해야 할 것은 ‘뒤처진다’는 공포에 휩쓸려 사회적 기준을 허무는 것이다. 기술 경쟁은 중요하지만, 그 경쟁의 방식이 한국 사회의 가치와 안전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결국 선택은 명확하다. 데이터는 더 많이 모으는 것보다, 어떻게 관리하고 누구를 위해 쓰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의 공격적인 데이터 수집 전략은 한국에 분명한 위협이지만, 동시에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는 교훈도 준다. 한국이 신뢰와 안전을 바탕으로 한 자율주행과 AI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단기 경쟁을 넘어 장기적 우위를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