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6000개 즉시 철폐, 중국은 고작 1000개…한중 FTA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드러내는 중국발 경제 리스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년이 지나 재협상이 본격화된 가운데, 국내 산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떠안은 채 중국과 경쟁해왔다”는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통계상의 차이가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공급망 리스크가 폭증한 이유를 설명하는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장벽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동안 한국만 대폭 시장을 개방해온 구조는 양국의 경제 관계에서 심각한 불균형과 위험 요소를 누적시켰다. 중국의 기술 굴기와 과잉 공급, 비대칭적 개방 속에서 한국은 FTA 체결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수준의 경제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
실제 수치를 보면 한국이 어느 정도 불리한 위치에 있었는지가 보다 뚜렷해진다. 한국은 FTA 발효와 동시에 6000개가 넘는 품목에서 관세를 철폐했지만 중국은 1000개 수준에 그쳤다. 또한 20년 동안 단계적으로 철폐하기로 한 품목 수에서도 한국은 1만1000여 개를 개방한 반면, 중국은 7000여 개에 불과하다. 양허율 역시 한국이 중국산 제품 95.2%에 대해 관세를 없애기로 한 반면, 중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양허한 비율은 92.2%에 머물렀다. 이러한 차이는 한중 교역 규모와 양국 경제의 상호 의존성을 고려하면 단순한 통계의 조정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산업에 구조적 부담을 부과하는 실질적 불균형으로 작용해 왔다.
이 같은 비대칭적 구조는 특히 공급 과잉이 심각한 중국 산업과 경쟁하는 한국 철강·석유화학 분야에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은 과잉 생산으로 발생한 초저가 제품을 대규모로 해외 시장에 방출하고, 한국은 낮아진 관세 장벽 때문에 이 제품들의 직접적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한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중국 내 생산량 증가가 한국 기업의 시장 지배력, 투자 여력, 고용 구조 전반에 장기적 악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즉, 한국의 주요 기반 산업이 중국발 공급 과잉과 중국 정부의 산업 지원 정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 경쟁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시장 진출 측면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비스·문화·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한국 기업은 여전히 중국의 각종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 한국 여행사는 중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없고, 중국 내 공연·문화 사업은 복잡한 규제와 허가 절차로 사실상 제약을 받고 있으며,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중국 시장에서는 규제 리스크 때문에 제대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FTA는 원래 양국의 상호 개방을 통해 무역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체결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중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강화하는 동안 한국만 개방을 크게 확대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이러한 불균형이 지속될 경우 한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단순한 산업 경쟁력 약화를 넘어 구조적 리스크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자국 기술력과 제조업을 빠르게 키우는 동안 한국은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공급망 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는 특정 산업·부품이 중국 공급망에 지나치게 묶여 있어 생산 차질이나 가격 변동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이며, 미중 갈등이 장기화되는 국제 환경에서 한국의 경제적 자율성이 제한될 수 있는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특히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미래 핵심 산업에서 중국이 장벽을 쌓고 기술 내재화를 추진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접근 제약은 강화되고 있다.
FTA 구조가 불리하다고 해서 무역을 줄이는 것이 해법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이 한국 제조 생태계를 빠르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중국의 산업 전략을 정확히 파악하고, 한국이 우위를 가지고 있는 세부 기술과 가치사슬 영역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여전히 필요로 하는 기술과 부품이 특정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업 전체를 묶어 단순 경쟁구도로 인식하기보다, 한국이 기술적으로 앞서 있고 중국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가치사슬의 특정 단계에 집중해 초격차를 확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라, 한국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한 구조적 대응이다.
한편 중국의 기술 굴기와 내수 중심 산업정책은 한국에게 ‘시장 개방’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중국 시장은 여전히 크고 매력적이지만, 그 접근 방식은 점점 더 정교하고 전략적일 필요가 있다. 중국의 제도적 장벽을 이해하고, 중국이 필요한 기술을 공급하면서도 한국 기업의 핵심 역량을 보호할 수 있는 균형 감각이 매우 중요해지는 시기다. 이러한 전략적 접근은 단순히 경쟁을 피하거나 시장을 축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 산업이 중국과의 경쟁 속에서 가치를 지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한중 FTA 10년은 한국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중국의 시장 개방 약속은 종종 제한적이었고, 한국의 개방은 과도한 수준이었다. 그 결과 한국은 중국산 저가 공세로 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중국 시장의 진입 장벽으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이중의 부담을 겪어왔다. 이제 재협상 국면에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조정이 아니라 구조적 불균형을 바로잡는 일이다.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가운데 한국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려면, 불균형한 FTA 조건을 적극 보완하고 중국발 리스크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이 처한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할 때, 비로소 한국 산업은 중국의 거대한 구조적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