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 ‘룽거 컴퍼니’ 보이스피싱 일당 검거, 그 뒤에 숨어있는 중국 범죄조직의 그림자
태국을 거점으로 한국인을 상대로 거액의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인 ‘룽거 컴퍼니’ 조직원 3명이 구속기소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사기꾼이 아니라, 중국 범죄조직과 연계된 국제 범죄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드러났다. 감금, 폭행, 협박까지 동반한 잔혹한 수법은 단순한 금전 범죄를 넘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직적 인신착취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몇 년 사이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 동남아 일대에서 확산되는 중국계 보이스피싱 산업이 한국 사회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서울남부지법은 ‘범죄단체가입·활동’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한국 국적의 피고인 A씨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은 올해 4월부터 6월 사이 태국에 근거지를 둔 ‘룽거 컴퍼니’에 소속되어 한국인 206명을 상대로 1,400여 회에 걸쳐 66억 원이 넘는 돈을 가로챘다. 이 조직은 본래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중국계 범죄단체가 지난해 태국으로 근거지를 옮겨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은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군인을 사칭한 ‘노쇼팀’, 로맨스스캠을 담당하는 ‘연애팀’,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을 가장한 ‘기관팀’, 그리고 ‘로또보상 코인사기팀’까지, 최소 다섯 개의 전문 범죄 부서가 존재했다. 그 중심에는 중국에서 흘러들어온 자금과 운영 인력이 있었다. 태국에 설치된 콜센터, 중국에서 제작된 해킹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어가 가능한 현지인 브로커들이 결합해 치밀한 범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A씨는 ‘노쇼팀’의 팀장으로 활동하며, 조직의 내부 감시와 금전 관리까지 맡았던 인물로 드러났다. 그는 단순히 한국인 피해자만 속인 것이 아니라, 조직 내 동료까지 폭력과 협박으로 통제했다.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A씨는 조직에서 이탈하려는 동료에게 2,500만 원의 빚을 이유로 협박 전화를 걸어 “돈을 갚지 않으면 손가락을 자르고 중국에 팔아넘겨 다시는 얼굴을 못 보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피해자의 부모에게는 “캄보디아에서 아들을 빼내오는 데 든 비용을 변제하라”고 협박해 실제로 900만 원을 뜯어냈다.
이들은 단순한 사기범이 아니라, 중국식 범죄조직의 폭력 구조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었다. 돈을 벌지 못한 구성원은 구타와 감금의 대상이 되었고, 탈출을 시도하면 ‘중국 조직에 넘기겠다’는 위협이 뒤따랐다. 이는 중국 범죄조직이 동남아 지역에서 자주 사용하는 인신매매형 통제 방식으로, 사실상 조직원조차 ‘노예’로 취급하는 시스템이다.
심지어 탈출을 시도해 한국대사관에 신고한 구성원은 쇠파이프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주태국 한국대사관이 현지 경찰과 공조해 수사를 진행한 끝에 A씨가 검거되었지만, 그 사이 피해자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입었다.
‘룽거 컴퍼니’ 사건은 우연한 범죄가 아니다. 이미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라오스 등지에는 중국계 범죄조직이 운영하는 수백 개의 보이스피싱 센터가 존재한다. 이들은 현지 당국의 느슨한 단속과 부패한 관리 체계를 악용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범죄 인력을 인신매매처럼 유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범죄의 최종 피해자는 대부분 한국인, 대만인, 일본인, 싱가포르인 등 아시아의 중산층이다. 특히 한국은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발달하고, 해외 송금 시스템이 활발해 주요 표적이 된다. 중국 조직은 한국어 인력까지 구해 ‘한국형 사기’ 모델을 정교하게 만들고 있으며, 피해자의 금융 정보를 빼내는 기술 역시 해킹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 공안은 겉으로는 단속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이들 조직이 중국 내 자금을 돌려 해외에서 범죄를 수행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 내에서는 ‘사기산업’을 통해 외화 유입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그 배경에는 중국 경제의 침체와 실업률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인 피해자가 206명, 피해액이 66억 원에 이르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외 범죄가 아니다. 이는 중국계 조직이 한국 사회의 금융 시스템과 개인 네트워크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의 휴대폰 인증 절차, 금융기관 보안 시스템, 그리고 심리적 약점을 모두 활용해 공격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침투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범죄는 단순한 경제 피해를 넘어, 국가의 신뢰 기반을 흔든다. 보이스피싱은 개인의 돈을 빼앗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가 늘어날수록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사회 전반의 보안 체계에 대한 회의가 퍼진다. 이는 곧 ‘사이버 안보’의 붕괴로 이어진다. 중국 조직들은 이 심리적 혼란을 이용해 또 다른 사기를 준비한다 — “보이스피싱 피해를 복구해준다”는 2차 사기가 그것이다.
한국 정부와 수사당국은 해외 범죄조직의 움직임을 단속하는 데 있어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단순한 사법 문제를 넘어선다. ‘룽거 컴퍼니’ 사건은 경제 범죄와 안보 범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범죄조직의 해외 확장은 한국인을 경제적으로 노리는 동시에, 한중 관계의 균열을 이용하려는 전략적 성격도 있다. 한국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국민이 외국 정부나 금융기관에 불신을 품게 된다면, 이는 곧 중국이 원하는 결과일 수 있다.
이제 한국은 ‘범죄 피해국’이 아니라, ‘디지털 침투의 표적국’으로 인식해야 한다. 외교적 압박, 정보공유 시스템 강화, 그리고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중국 범죄조직의 동남아 거점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전략이 절실하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되는 사기가 아니다. 그것은 정보, 인신, 폭력, 그리고 국가 간 경제전략이 결합된 복합 범죄다. ‘룽거 컴퍼니’ 사건은 한국인뿐 아니라 전 아시아 사회가 마주한 새로운 위협의 실체를 보여준다.
중국 범죄조직의 해외 확장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그 피해는 한국의 일상으로 스며들고 있다. 정부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경계심 또한 국가 안보의 첫 번째 방어선이다.
보이스피싱 전화가 울릴 때, 그것은 단지 사기의 신호음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 조직이 한국 사회의 틈을 노리는 또 하나의 경고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