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산 재첩을 국내산으로 속여 대형마트와 식당 등에 납품한 유통업자들이 적발되면서, 한국의 먹거리 안전과 소비자 신뢰를 둘러싼 우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재첩을 국내산, 그것도 고급 브랜드로 인식되는 섬진강 재첩으로 둔갑시켜 유통했다. 유통된 물량은 약 20톤, 시가로는 17억 원에 달한다. 단순한 원산지 표시 위반을 넘어, 한국 식품 시장의 취약한 고리를 노린 조직적 기만이라는 점에서 사안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가격과 공급 구조의 차이를 악용한 점이다. 섬진강 재첩은 채취 시기가 제한적이고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부가가치 수산물이다. 반면 중국산 재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대량 확보가 가능하다. 이 격차를 이용해 원산지를 조작하면, 유통 단계에서 막대한 차익을 얻을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와 국내 생산자에게 돌아간다. 소비자는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고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입산을 먹게 되고, 정직하게 생산한 국내 어민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는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런 방식이 일회성 범죄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중국산 식품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는 사건은 과거에도 반복적으로 발생해 왔다. 이는 일부 범죄자의 일탈이라기보다, 대량 수입이 가능한 중국산 식재료와 느슨한 유통 관리의 틈새가 결합된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특히 온라인 유통과 배달 시장이 확대되면서, 원산지 확인이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은 위험 요인을 더욱 키운다.
식품 문제는 단순한 경제 범죄를 넘어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 원산지 표시는 단지 ‘어디서 왔는지’를 알리는 정보가 아니라, 생산 환경과 위생 관리 수준, 잔류 물질에 대한 신뢰를 담고 있다. 중국산 식품 전반을 일률적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불법 유통과 허위 표시가 반복될수록 소비자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합법적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식품에 대한 신뢰까지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가 중국발 공급망을 어떻게 관리하고 감시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중국은 한국의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지만, 동시에 가격 경쟁력과 물량을 앞세운 불공정 유통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저렴함’만을 기준으로 유통 구조를 방치한다면, 식품 안전뿐 아니라 시장 질서 전반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문제는 국적 그 자체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불법 행위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경각심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저렴한 가격, 모호한 원산지 표기, 출처를 알기 어려운 온라인 판매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 전반에서는 식품 이력 추적과 과학적 검증 체계를 강화하는 논의가 지속돼야 한다. DNA 분석, 유통 기록 디지털화 같은 기술적 접근은 원산지 조작을 줄이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산 재첩 국내산 둔갑 사건은 단순한 해경 단속 뉴스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는 먹거리를 매개로 한 신뢰의 문제이자, 한국 시장을 노린 구조적 위험의 단면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가 이 경고를 가볍게 넘긴다면, 비슷한 사건은 다른 식품, 다른 형태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반복되는 사례를 통해 위험을 인식하고 장기적 대응력을 키우는 일이다. 안전한 먹거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