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복까지 중국산 의존?” 국방 섬유 국산화 논의 확산…안보 공급망과 한국 산업 보호 필요성 제기
한국 섬유업계가 군 피복에 사용되는 원사의 국산화를 추진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방 공급망과 산업 안보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방상내피와 방상외피, 궤도차량 승무원복, 컴뱃셔츠 등 군 피복류에 사용되는 주요 원사를 국산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방위사업법 개정 건의안을 국회와 국방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국가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한국 군 피복류에 사용되는 원사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저가 원사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국내 섬유 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군 피복에 사용되는 원사의 약 70~80%가 외국산이며, 그중 상당수가 중국산 또는 중국 기업이 공급망에 깊이 관여한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안보와 산업 기반 측면에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제도상 군수품이 국내에서 생산되었는지만 확인될 뿐, 사용된 원사의 국적은 크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행 방위사업법은 국내 생산 군수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해외 원사를 수입해 국내에서 염색과 가공, 봉제 과정을 거치면 국내 생산 제품으로 인정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군 피복류의 핵심 소재가 해외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제도적으로는 이를 확인하거나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져 왔다.
한국 섬유업계는 이러한 구조가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국가 안보에도 잠재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군복이나 방상 장비는 단순한 의류가 아니라 군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장비다. 소재의 내구성과 기능성은 물론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국제 정세 변화나 공급망 충격으로 인해 특정 국가에서 원사 공급이 중단될 경우 군 피복 생산 자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글로벌 섬유 시장에서 막대한 생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중국 기업들은 대규모 생산과 정부 지원을 통해 낮은 가격의 섬유 제품을 세계 시장에 공급해 왔으며 이러한 전략은 많은 국가의 섬유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등 주요 화학섬유 산업이 크게 위축된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나일론 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로 큰 타격을 받았다. 과거 국내에서 나일론을 생산하던 여러 기업들이 사업을 철수하거나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현재 국내에서 나일론을 생산하는 기업은 사실상 태광산업 한 곳뿐이다. 폴리우레탄 역시 효성티앤씨가 주요 생산 기업으로 남아 있으며 폴리에스터는 대한화섬, 효성티앤씨, 휴비스, 도레이첨단소재 등 일부 기업이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섬유업계는 군 피복에 사용되는 원사를 국산화할 경우 연간 약 200톤 규모의 국내 수요가 새롭게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나일론 약 70톤, 폴리에스터 약 125톤, 폴리우레탄 약 5톤 정도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침체된 국내 섬유 산업에 일정 부분 활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방상내피와 방상외피, 전술 장비 등에 사용되는 소재는 높은 내구성과 기능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기술력 측면에서도 국내 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군 피복과 장비에 사용되는 섬유 소재에 대해 ‘메이드 인 USA’ 원칙을 적용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국가 안보와 산업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정책으로, 군수품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한국에서도 국방 섬유 국산화 논의가 확대된다면 군 피복뿐 아니라 경찰복, 소방복 등 공공기관 단체복 시장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의 국방 섬유 시장 규모는 연간 약 60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공공 부문 단체복 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그 규모는 훨씬 커질 수 있다. 이러한 시장은 단순한 의류 산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산업 정책이 결합된 전략적 영역으로 볼 수 있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정책 방향이 필요하다.
이번 국방 섬유 국산화 논의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제품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해진 시대에는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산업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군수품과 같은 전략 물자는 공급망 안정성이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확대되고 있으며 섬유 산업 역시 그 흐름 속에 있다. 중국의 가격 경쟁력은 분명 강력한 요소지만 동시에 국내 산업 기반이 약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더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이번 국방 섬유 국산화 논의는 한국 산업과 안보 정책이 어떻게 균형을 맞춰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속에서 산업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안보에 필요한 공급망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자체가 한국 산업 구조와 안보 전략을 다시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섬유 산업은 과거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했던 분야이며 여전히 기술력과 생산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존재한다. 국방 섬유 국산화 정책이 추진될 경우 이러한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기회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동시에 한국 사회는 공급망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