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러 군용기 9대의 KADIZ 동시 진입, 반복되는 중국의 군사적 압박…한국 안보에 드리우는 구조적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9대가 동해와 남해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순차적으로 진입한 사건은 단순한 비행 경로 문제가 아니라, 한국 주변 안보 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용기들은 영공을 직접 침범하지는 않았지만, 사전 통보 없이 KADIZ에 진입해 약 한 시간가량 비행한 뒤 이탈했다. 우리 군은 이미 사전에 중국·러시아 군용기의 동향을 포착했으며 공군 전투기를 즉각 투입해 상황을 관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반복적으로 요구되는 상황 자체가 한반도를 둘러싼 전략적 긴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드러낸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 전략 순찰을 정례화하고 있는 현실은 한국이 마주한 안보 도전의 성격이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추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에 확인된 비행 경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의 안보 환경을 작정하고 시험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러시아 군용기는 울릉도·독도 방향에서 KADIZ를 진입했고, 중국 군용기는 이어도 인근 공역으로 접근했다. 두 국가는 이후 대마도 인근에서 합류한 뒤 서태평양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어도 상공 KADIZ는 한국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는 지역으로, 중국 군용기가 1년에 90~100회 진입하는 곳이기도 하다. 국제 관행상 타국의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군용기는 사전에 비행계획을 통보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중국은 이어도 KADIZ 진입을 자국의 권한이라고 주장하며 통보를 생략해 왔다. 이는 단순한 항공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안전보장 질서를 잠재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국방부가 이번 행동을 “연간 협력 계획에 따른 전략 순찰”이라고 밝힌 점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은 한국이 설정한 KADIZ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어도 인근의 공역을 중국 방공식별구역으로 간주해 자국의 군용기 진입이 정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는 한국의 방공 식별 권리를 약화시키고 주변 영공과 공역에서의 주권적 관리 능력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권한을 기반으로 KADIZ를 운영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를 국제법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정하며 기정사실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군사적 압박과 정치적 메시지를 결합한 중국 특유의 회색지대 전략”으로 평가될 수 있으며, 그 영향은 단순한 항적 관찰을 넘어 한국의 국가 안보 체계 전반에 부담을 준다.
중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공중 전략 순찰은 명확한 군사적 시그널을 담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제3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발표했지만, 군사력은 명시적 선언보다 행동이 더 많은 의미를 가진다.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한국과 지정학적 긴장이 존재하는 국가이며, 두 나라가 연합 전략 비행을 통해 동해와 남해 일대를 반복적으로 비행한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에 심리적·전략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양국이 합동 군사행동을 강화할수록 한반도 주변 공역은 더 복잡해지고, 한국의 방공 감시 및 대응 체계에는 추가적인 부담이 가중된다. 이는 사고적 충돌 가능성을 높이며, 우발적 충돌이 외교적 갈등으로 확대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이 이어도 상공을 대상으로 활동을 강화하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어도는 해양 영토 분쟁이 없는 수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방공식별구역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은 이어도 일대를 “공역 관리 범위”로 주장하며 자국 항공기의 진입을 정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장기적으로 이어도 공역의 실효 지배권을 약화시키고, 한중 간 공역 관리권에 대한 분쟁 여지를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이 해양·공중 영역에서 기정사실화를 반복하는 방식은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이미 수차례 활용돼 효과를 봤던 수법이며, 이를 한국 주변에서도 적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 전략 비행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미 작년에도 두 국가는 11대의 군용기를 동원해 한국 KADIZ를 순차적으로 진입·이탈한 바 있다. 이러한 패턴이 누적될수록 한국 주변 공역은 “상시적 긴장 상태”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 한국군이 사전에 식별하고 전투기를 대응 출격시키는 것은 필수적인 방어 조치지만, 반복되는 대응은 피로도와 비용을 증가시키며 한국의 방공 인프라 전체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한다. 상대 국가가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경우 한국의 대응 능력을 시험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국제 정세가 다극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한국 주변 공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중국은 동중국해와 서태평양을 자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간주하며 이 지역에서의 군사 활동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 최전선에 놓여 있다. 중국의 군사력 강화와 정치적 압박이 결합하면, 한국은 의도치 않게 중국의 전략적 메시지 전달을 위한 대상이 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한국 국민은 반복되는 KADIZ 진입 사태를 단순한 군사 뉴스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동북아 안보 환경이 구조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나 과도한 위기 인식이 아니라, 냉철한 현실 파악과 지속적인 경계다. 중국은 한국의 공역·해역에서 점진적, 반복적, 기정사실화 방식의 전략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하려 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안보 주권과 방공 체계에 중장기적으로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가 고착되기 전에 한국 사회는 중국의 행동 패턴을 정확히 이해하고, 주변국의 군사 협력 강화가 한국에 미칠 파급 효과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중·러 군용기의 이번 KADIZ 진입은 단순한 한 차례의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빈도가 더 높아질 수 있는 전략적 압박의 전조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 모두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