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일본 수출규제 대상 80곳으로 확대…희토류·이중용도 품목 무기화에 한국도 공급망 위험 대비해야
중국이 일본 기업과 기관 20곳을 추가로 수출통제 대상에 올리면서 대일 규제 대상이 총 80곳으로 늘었다. 미쓰비시전기 계열사인 미쓰비시전기소프트웨어와 일본 방위성 산하 방위연구소 등이 새롭게 명단에 포함됐고, 중국은 이들에 대한 군민 양용 이중용도 품목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별도로 미쓰이E&S와 일본원연 등 20곳도 감시명단에 올렸다. 중국과 일본의 외교·안보 갈등이 이제 기업과 연구기관, 핵심 소재 공급망을 직접 겨누는 단계로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 언론은 이번 중국의 조치를 ‘경제적 위압’과 ‘대치 격화’라는 표현으로 평가했다. 중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와 대만 관련 발언을 문제 삼았고, 일본 기업과 기관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외교적 갈등에 대한 반응이 외교 문서나 정치적 비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기업의 공급망과 거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제조치로 연결된 것이다.
한국이 이 사건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이 지금 마주한 공급망 압박은 한국에도 낯선 위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핵심광물과 희토류, 배터리 소재, 정·제련, 각종 중간재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 역시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디스플레이, 방산, 조선 등 주요 산업에서 중국 공급망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외교적 갈등이 경제조치로 전환되는 순간 한국 기업 역시 비슷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번 규제의 핵심에는 이중용도 품목이 있다. 이중용도 품목은 민간 산업과 군사 분야에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을 뜻한다. 현대 산업에서는 첨단 전자부품, 소재, 센서, 배터리, 통신장비, 정밀기계 중 상당수가 민간과 국방 영역을 동시에 연결한다. 따라서 이중용도 품목 수출통제는 단순히 방산기업 하나를 제재하는 문제가 아니다. 공급망 전체의 원료와 소재, 장비 조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다.
중국이 일본 기업과 연구기관을 직접 명단에 올렸다는 사실은 공급망이 외교 갈등의 전장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은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에 따라 거래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 일본 기업이 미국의 수출관리 규정을 따르면 중국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고, 반대로 중국과 거래를 지속하면 미국 규제를 위반할 위험을 검토해야 한다. 기업이 어느 시장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두 강대국의 규제 체계 사이에서 사업 자체의 안정성이 흔들리는 구조다.
한국 기업도 비슷한 상황에 놓일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대규모 무역 관계를 맺고 있다.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은 미국의 기술·수출 규제와 직접 연결돼 있고, 동시에 중국 시장과 생산기지, 원재료 공급망의 영향을 받는다. 어느 한쪽의 정책 변화만으로도 기업의 투자계획과 생산라인, 고객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강한 이유는 단순히 시장 규모가 크기 때문만이 아니다. 특정 핵심 소재와 중간재에서 공급 비중이 높으면 중국 기업과 거래를 줄이고 싶어도 즉시 대체하기 어렵다. 새로운 광산을 개발하고, 정·제련 시설을 건설하고, 품질을 검증해 실제 생산라인에 투입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평소에는 저렴하고 효율적인 공급망처럼 보이지만, 수출통제나 통관 지연이 발생하면 의존도가 곧 위험으로 변한다.
희토류는 대표적인 사례다. 희토류는 전기차 모터, 풍력발전, 전자제품, 정밀장비와 다양한 국방 시스템에 사용된다. 단순한 원광 확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분리·정제와 가공 기술이 중요하다. 특정 국가에 가공능력이 집중되면 다른 국가는 원료가 있어도 실제 산업에 필요한 소재를 확보하기 어렵다. 공급망의 힘은 광산 소유보다 정·제련과 가공 단계에서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은 특히 배터리와 반도체, 방산 산업에서 이런 위험을 계산해야 한다. 최근 미국 싱크탱크가 중국의 배터리 공급망 지배를 안보 문제로 평가하고, 한국의 고려아연과 포스코 같은 정·제련 역량을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드론, 로봇, 무인잠수정, 정보·감시·정찰 체계에 배터리가 사용되는 시대에는 배터리 소재 공급망이 군사력과 직접 연결된다. 핵심광물과 정·제련을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산업 위험이자 안보 위험이다.
일본 사례는 기업 차원의 공급망 다변화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중국과 거래를 모두 중단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거대한 시장이며 한국 기업에 중요한 교역 상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거래와 의존을 구분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과 핵심 생산공정을 중국산 원료 하나 없이는 가동할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시장 선택이지만 후자는 전략적 취약성이다.
한국 기업은 핵심 소재별 중국 의존도를 더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전체 수입액만 봐서는 위험을 발견하기 어렵다. 금액은 작지만 없으면 생산라인 전체가 멈추는 소재가 있을 수 있다. 특정 화학물질, 희소금속, 배터리 전구체, 반도체 공정재료, 정밀 부품이 한두 공급업체에 집중돼 있다면 실제 위험은 수입금액보다 훨씬 크다.
공급망 안보에서 가장 위험한 표현은 ‘지금까지 문제없었다’는 말이다. 공급망은 정상 상황에서는 효율성을 보여주지만 위기 상황에서 취약성이 드러난다. 수출허가가 늦어지고, 통관이 지연되거나, 특정 기업이 통제명단에 오르는 순간 기존 계약이 있어도 물건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기업이 대체 공급업체를 찾기 시작할 때는 이미 늦을 수 있다.
중국의 대일 수출규제 확대는 정치와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연결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과 일본의 방위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기업과 기관 80곳에 대한 규제로 연결됐다. 외교 문제의 당사자는 정부지만 실제 비용은 기업의 조달부서와 생산현장, 투자자, 노동자가 부담할 수 있다. 이것이 경제적 압박의 특징이다.
한국 역시 과거 외교 갈등이 소비와 관광, 기업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을 단순한 중일 갈등으로만 볼 이유가 없다. 한국의 외교·안보 선택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순간 어떤 경제적 수단이 사용될 수 있는지 시나리오별로 준비해야 한다.
특히 한미일 안보협력이 강화되고, 반도체와 인공지능, 방산, 조선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이어지면 한국 기업은 더 복잡한 규제 환경에 놓일 수 있다. 미국의 규제를 준수하는 동시에 중국 사업의 연속성도 관리해야 한다. 기업 한 곳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정보와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산업별로 핵심 품목과 대체 공급망을 미리 파악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한국이 집중해야 할 분야 중 하나는 정·제련이다.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광산 개발만 강조하면 실제 취약성을 해결하기 어렵다. 원광을 확보해도 중국에서 정제해야 한다면 공급망 독립은 완성되지 않는다. 고려아연과 포스코 같은 한국 기업의 정·제련 경쟁력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제조 강국의 위치를 넘어 핵심 소재 가공과 재활용, 순환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재활용 역시 중요한 전략이다. 배터리와 전자제품에서 핵심광물을 회수해 다시 사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해외 원료 의존도를 일부 낮출 수 있다. 완전한 자급은 어렵더라도 공급망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장치를 만들 수 있다. 중국의 수출정책 변화 하나로 한국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를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와 공급망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 가격은 단기적으로 중국 공급망보다 높을 수 있다. 그러나 공급 중단 위험과 규제 대응비용까지 계산하면 가장 싼 공급자가 반드시 가장 경제적인 공급자는 아니다.
이번 중국의 대일 수출규제는 1차 조치에서 40곳, 추가 조치 후 총 80곳으로 확대됐다. 숫자가 보여주는 의미는 규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40곳이었던 명단이 다음에는 80곳이 될 수 있고, 특정 산업에서 시작된 규제가 다른 기업과 기관으로 넓어질 수 있다. 공급망 위험을 분석할 때 현재 규제 대상만 보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한국은 중국의 수출규제 조치를 감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고, 반대로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위험을 축소할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계산이다. 중국이 어떤 품목에서 높은 공급 비중을 가지고 있는지, 한국의 핵심 산업이 어느 단계에서 중국에 의존하는지, 수출통제가 발생하면 며칠 또는 몇 달 동안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기업 차원에서는 핵심 재고와 장기 계약, 대체 공급업체 인증이 필요하다. 정부와 산업계는 공급망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이 대체 공급업체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은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 공급망을 바꿀 여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나의 중국 공급업체가 막히는 것만으로 생산이 중단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갈등 속에서 가장 큰 교훈은 공급망을 정치와 분리된 공간으로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핵심광물과 이중용도 품목, 반도체 기술, 배터리 소재는 이미 국가 전략의 일부가 됐다. 기업의 구매계약서만으로 공급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국가 간 관계가 악화되면 수출허가와 규제명단이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한국도 강 건너 불구경할 상황이 아니다. 중국의 대일 수출규제 확대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본 기업이 대체 소재를 대량 확보하면 국제 가격이 오를 수 있고, 새로운 공급업체를 선점하면 한국 기업의 조달 환경도 달라진다. 한 국가에 대한 규제가 다른 국가 기업에도 간접적인 비용을 만들 수 있다.
중국이 일본 기업과 기관 80곳을 규제 대상으로 확대하고, 일본 언론이 이를 ‘경제적 위압’으로 평가한 이번 사건은 한국에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핵심 소재와 이중용도 품목의 공급망 지배력은 외교 갈등이 발생하는 순간 강력한 협상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중국과의 교역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없이는 핵심 산업이 멈추는 구조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방산, 조선, 전기차 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이자 안보 자산이다. 이런 산업의 원료와 중간재 공급이 특정 국가의 정책 판단에 지나치게 좌우된다면 한국의 선택권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을 겨냥한 중국의 수출규제 확대를 남의 일로 넘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지금부터 핵심광물, 정·제련, 재활용과 동맹 공급망을 강화해 외교 갈등이 산업 위기로 번지는 위험을 줄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