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법원이 전 세계 특허료까지 정한다?…EU WTO 제소, 한국 통신·자동차·전자기업 SEP 권리까지 흔들 수 있다
중국 법원이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해외 특허까지 포함한 글로벌 표준필수특허의 라이선스 조건과 로열티 요율을 결정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유럽연합(EU)의 갈등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으로 번졌다. 한국 지식재산처와 산업통상부가 관련 기업과 전문가들을 불러 별도의 간담회를 열고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점검한 것도 이 문제가 한국과 무관한 중국-EU 간 통상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준필수특허는 통신, 자동차, 전자 등 국제 기술표준을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특허로, 글로벌 제조업과 첨단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한국은 세계적인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기업과 이를 활용하는 기업이 모두 존재하는 만큼, 중국 법원이 글로벌 라이선스 조건과 로열티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황은 한국 기업의 특허 수익과 협상력에 직접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표준필수특허는 일반 특허와 성격이 다르다.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기술을 제품에 적용하려면 해당 특허를 사실상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허권자는 통상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FRAND 조건으로 사용을 허락한다. 스마트폰 통신기술부터 커넥티드카, 전자기기, 사물인터넷까지 수많은 산업이 이 구조 위에서 움직인다. 문제는 글로벌 기업들이 여러 국가에 특허를 보유하고 제품 역시 여러 나라에서 판매하는 만큼 라이선스 협상도 국제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 국가의 법원이 자국 내 특허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 등록된 특허까지 포함한 전 세계 라이선스 요율을 정한다면, 그 판단은 사실상 다른 국가의 특허권 가치와 기업 간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WTO 분쟁에서 EU는 바로 이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EU는 중국 법원이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해외 특허를 포함한 글로벌 표준필수특허 라이선스 조건과 로열티 요율을 결정하는 것이 WTO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 즉 TRIPS와 충돌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중국 법원의 판단 범위가 중국 시장 안에 머무는지, 아니면 중국 밖에서 존재하는 특허와 계약관계까지 사실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다. 글로벌 특허권자가 중국 법원에서 결정된 요율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라이선스 협상을 해야 한다면 중국은 거대한 내수시장과 사법체계를 결합해 국제 특허가격 형성 과정에서 매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구조가 한국에 위험한 이유는 한국 기업이 단순한 특허 사용자가 아니라 세계적인 기술특허 보유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통신·전자·자동차·반도체 관련 기업들은 수십 년 동안 연구개발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국제표준에 포함되는 기술을 축적해왔다. 표준필수특허의 로열티는 단순한 부수입이 아니라 오랜 연구개발 투자를 회수하고 다음 세대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자산이다. 만약 중국 법원이 한국 기업이 보유한 해외 특허까지 묶어 글로벌 로열티를 낮게 설정할 수 있는 구조가 굳어진다면 한국 기업은 자사가 개발한 기술의 가격을 스스로 협상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질 수 있다.
특히 중국에는 스마트폰, 통신장비, 전기차, 가전 등 표준기술을 대규모로 사용하는 제조기업이 밀집해 있다. 중국 업체들이 해외 특허권자와 라이선스 협상을 벌일 때 중국 법원이 글로벌 요율을 결정할 수 있다면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자국 법원을 통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특허사용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중국 내 소송과 글로벌 라이선스 결정이 협상 압박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생긴다. 세계 최대 제조시장 중 하나인 중국이 자국 사법권과 시장규모를 동시에 활용한다면 한국 기업은 단순한 기술경쟁을 넘어 법률·통상 환경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문제는 자동차 산업에도 직접 연결된다. 오늘날 자동차는 단순한 기계제품이 아니라 이동통신, 위치정보, 무선 업데이트, 인포테인먼트, 차량 간 통신 등 수많은 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하는 거대한 전자기기가 됐다. 차량 한 대에도 수많은 표준필수특허가 적용될 수 있고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이 확대될수록 관련 특허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한국 자동차 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SEP 로열티 기준이 특정 국가 법원의 판단에 크게 좌우된다면 기술을 개발한 기업과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 사이의 비용구조 자체가 변할 수 있다.
전자와 통신산업에서는 위험이 더욱 크다. 5G와 앞으로의 6G, 와이파이, 영상압축, 사물인터넷 등 국제표준은 수많은 기업의 특허가 결합되어 만들어진다. 한국 기업들이 국제표준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와 인력을 투입하는 이유는 기술이 표준에 채택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적인 경쟁력과 특허가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합의된 라이선스 협상 대신 특정 국가의 법원이 글로벌 요율을 사실상 결정하는 관행이 확산된다면 표준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의 투자 유인이 약해질 수 있다. 결국 특허권의 가치가 기술 수준보다 어느 나라 법원에서 분쟁이 벌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은 한국처럼 기술수출과 지식재산 경쟁력이 중요한 국가에 불리하다.
중국의 산업경쟁력이 커지는 과정에서 특허분쟁은 단순한 법률 문제가 아니라 산업정책과 연결된 전략적 요소가 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과거 저가 생산과 규모의 경제를 앞세웠다면 최근에는 통신, 전기차, 배터리, AI 등 첨단산업에서 자체 특허와 국제표준 영향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법원이 글로벌 특허 라이선스 조건까지 적극적으로 결정하게 되면 중국 기업은 기술경쟁력뿐 아니라 자국 사법체계라는 추가적인 수단까지 활용할 수 있다. 한국 기업에게는 제품 가격과 기술성능만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료와 법률환경까지 포함한 새로운 비용경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한국이 이번 WTO 분쟁에 제3자로 참여하는 문제를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WTO 제3자 참여는 분쟁 당사국이 아니더라도 이해관계가 있는 회원국이 법률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절차다. 한국에는 글로벌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기업과 이를 대규모로 사용하는 기업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국제적 기준이 어떻게 정립되는지는 향후 한국 기업의 특허권 행사와 라이선스 협상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EU와 중국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에서 부여된 특허와 글로벌 계약 조건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라는 국제 지식재산 질서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다.
특히 WTO 상소기구 기능이 정지된 상황에서도 패널 절차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분쟁의 논리와 판단은 향후 다른 국가와 기업의 특허분쟁에서도 중요한 참고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중국식 글로벌 요율 결정 방식이 국제적으로 폭넓게 인정되는 방향으로 굳어진다면 다른 국가 역시 비슷한 권한을 주장할 수 있고, 글로벌 특허 라이선스 시장은 여러 국가 법원이 서로 다른 요율을 제시하는 복잡한 구조로 변할 수 있다. 기술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보다 소송지역을 선택하는 전략이 더 중요해질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제표준과 특허시장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핵심은 중국 기업이나 중국 시장 자체가 아니라 중국의 거대한 제조시장과 사법권이 결합하면서 국제 기술규칙까지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다. 한국 기업이 보유한 SEP는 오랜 연구개발과 국제표준 경쟁을 통해 확보한 산업자산이다. 이런 권리의 경제적 가치를 중국 법원이 글로벌 범위에서 결정할 수 있는 선례가 넓어지면 한국 기업의 협상력과 기술투자 수익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통신과 자동차, 전자 산업이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라는 점에서 이는 일부 특허전문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문제다.
중국과 EU의 WTO DS632 분쟁은 겉으로 보면 복잡한 국제 특허소송처럼 보이지만 한국 기업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산업안보 문제다. 표준필수특허는 제품 하나의 특허료를 넘어 누가 국제표준을 만들고, 그 기술의 가치를 누가 결정하며, 미래 연구개발 수익을 누가 가져갈지를 결정하는 핵심 자산이다. 중국 법원이 해외 특허까지 포함한 글로벌 라이선스 조건과 로열티 요율을 정하는 권한을 확대한다면 한국 기업의 기술이 중국 시장에서 사용되는 과정뿐 아니라 세계시장 전체의 협상구조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은 이번 WTO 분쟁을 중국과 EU의 법률싸움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한국이 수십 년간 축적한 첨단기술의 가격과 권리를 누가 결정할 것인지라는 문제로 보고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