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롱바이 한국 자회사, 중국산 양극재를 ‘국산’으로 바꿔 테슬라 납품…33억원 원산지 세탁이 한국 배터리 신뢰까지 흔들었다
중국의 세계적 NCM(삼원계) 양극재 기업 롱바이가 설립한 한국 자회사 재세능원이 중국 본사에서 생산한 이차전지 양극재를 한국산으로 둔갑시켜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납품한 사건에서 관련 임직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청주지법 충주지원은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재세능원 임원이자 중국 국적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고, 범행에 가담한 한국인 직원 3명에게도 각각 500만~7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들이 2023년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중국 본사 공장에서 들여온 양극재를 한국산으로 표시해 테슬라에 납품한 횟수는 총 9차례, 거래금액은 약 33억원에 달한다. 단순한 서류 착오가 아니었다. 중국산과 한국산 양극재를 섞어 다시 포장하거나 중국산 양극재가 담긴 대형 톤백을 한국산 톤백으로 바꾸고 원산지 상표까지 교체하는 방식이 사용됐다. 한국 배터리 산업이 세계시장에서 쌓아온 ‘한국산 공급망’ 신뢰를 중국 생산품의 원산지를 바꾸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산업적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범행 동기도 한국 배터리 공급망이 왜 중국계 생산기반의 품질과 내부통제를 세밀하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조사 결과 재세능원에서 생산한 완제품 가운데 다수가 불합격 판정을 받아 재고가 부족해지자 테슬라가 요구한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중국 본사 공장에서 제품을 들여와 한국산으로 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충주에 연간 7만t 규모의 생산시설을 보유한 한국 자회사에서 정상적으로 생산된 제품만으로 주문량을 충족하지 못하자 중국에서 생산된 물량을 들여오고, 이를 그대로 중국산으로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산 외형으로 바꿔 납품한 것이다. 이는 한국 내 생산법인을 해외수출의 ‘국산 원산지’ 확보 수단처럼 활용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해외 고객은 단순히 회사 이름만 보고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국, 품질관리 체계, 공급망 추적 가능성 등을 함께 고려한다. 중국 본사 제품을 한국산으로 바꾸는 행위가 반복된다면 해외 고객 입장에서는 실제 한국 공장에서 제조된 제품과 중국산을 다시 포장한 제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의심하게 되고, 그 불신은 해당 회사 한 곳을 넘어 한국 배터리 소재 공급망 전체에 불필요한 검증비용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이 사건은 단순한 원산지 표시 위반보다 한국 배터리 산업의 국제적 신뢰 문제로 봐야 한다. 미국 전기차 시장과 배터리 공급망에서는 제품의 생산지역과 원재료 출처가 갈수록 중요한 거래조건이 되고 있다. 한국 배터리 소재기업들이 북미와 유럽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온 배경에는 품질뿐 아니라 중국 공급망과 구분되는 생산거점, 추적 가능한 원산지, 안정적인 납품체계에 대한 신뢰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중국계 기업의 한국 자회사가 중국에서 생산된 핵심 배터리 소재를 한국산으로 변경해 미국 기업에 공급한다면 ‘Made in Korea’라는 표시 자체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해외 고객이 한국산 표시를 그대로 믿지 못하고 개별 공장의 생산기록, 원료 입고자료, 제조 로트, 물류기록까지 추가 확인해야 한다면 정상적으로 한국에서 생산하는 기업들까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법원이 원산지 허위표시 수출이 건전한 대외무역 질서와 국가의 국제적 신인도에 피해를 주는 범죄라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 본사와 연결된 기업의 한 차례 원산지 조작이 한국 전체 배터리 산업이 구축해온 국가 브랜드와 무역 신뢰를 담보로 삼는 결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더욱 경계해야 할 부분은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한국 현지 생산법인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실제 한국 생산’과 ‘한국을 경유한 중국 생산’의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이다. 중국 배터리 소재기업에게 한국은 단순한 판매시장만이 아니라 글로벌 고객과 연결되는 중요한 제조·수출거점이 될 수 있다. 한국에 공장을 세우고 국내 인력을 고용하며 정상적으로 생산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일반적인 산업활동이지만, 중국 본사에서 만든 제품을 들여온 뒤 포장과 원산지 표지만 바꿔 한국산으로 수출한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이러한 방식이 방치될 경우 한국의 산업 인프라와 국가 브랜드가 중국산 제품의 출처를 희석하는 우회 플랫폼으로 악용될 위험이 있다. 특히 배터리는 완제품 자동차보다 공급망이 복잡하고 양극재·음극재·전구체·리튬·니켈 등 여러 단계가 얽혀 있어 한 단계에서 원산지 정보가 왜곡되면 최종 고객이 전체 공급망을 정확히 추적하기 어렵다. 한국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은 중국보다 싸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품질, 기술력, 투명한 공급망과 글로벌 규정 대응능력에 있다. 바로 그 투명성이 무너지면 한국이 중국과 차별화해온 핵심 경쟁력이 약화된다.
이번 사건의 수법 역시 우발적인 실수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를 보여준다. 재판부에 따르면 관련 직원들은 범행의 핵심인 이른바 ‘톤백 갈이’를 생산부 직원들에게 지시하거나 보고받았다. 중국산 제품과 한국산 제품을 혼합해 재포장하고, 중국산 제품이 들어 있는 대형자루를 한국산 표시가 붙은 자루로 교체한 뒤 원산지 표시까지 바꾸는 과정은 단순한 행정착오나 서류 입력 오류와 성격이 다르다. 공급망 추적에서 가장 중요한 물리적 표시와 포장 자체를 변경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배터리 소재는 최종 소비자가 직접 원산지를 확인하기 어려운 B2B 제품이어서 거래 상대방은 생산기업이 제공하는 품질서류와 원산지 정보에 크게 의존한다. 이런 시장에서 제조사가 정보를 의도적으로 바꾸면 구매기업이 이를 현장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중국 본사와 한국 자회사 사이에서 제품이 이동하는 기업일수록 생산량과 수입량, 공장별 재고, 포장기록, 수출물량이 서로 맞는지 정밀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들어온 물량이 한국 공장의 생산실적으로 바뀌는 순간 한국 산업의 신뢰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한국 배터리 산업에 중요한 경고를 남긴다. 재세능원은 중국 롱바이가 세운 한국 자회사이며 충주에 대규모 양극재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한국에 공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수출제품이 한국에서 생산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다. 한국이 앞으로 중국 배터리 기업과의 투자·생산 협력을 확대하더라도 핵심은 기업의 국적보다 생산과 원산지의 추적 가능성, 그리고 한국 산업의 신뢰가 중국산 제품의 우회표시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33억원이라는 거래금액 자체보다 더 큰 위험은 해외 자동차기업들이 한국산 배터리 소재를 바라보는 신뢰가 흔들리는 것이다. 중국산 양극재를 한국산으로 바꿔 테슬라에 납품한 사건이 반복된다면 한국산이라는 표시는 더 이상 품질과 생산거점을 보증하는 정보가 아니라 추가검증이 필요한 주장으로 취급될 수 있다. 한국 배터리 산업이 지켜야 할 것은 시장점유율만이 아니다. 중국 공급망과 경쟁하면서 어렵게 쌓아온 원산지 신뢰, 제조투명성, 그리고 ‘한국에서 생산됐다는 말은 믿을 수 있다’는 국제시장의 평가가 훨씬 더 중요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