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일 갈등의 불똥이 한국으로…중국의 문화 보복이 드러낸 K팝 산업의 위험한 현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면서 K팝 산업이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고 있다. 최근 중국 현지에서 예정된 K팝 그룹의 팬 사인회와 팬 미팅이 연달아 취소되거나 일본인 멤버만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행사 차질을 넘어, 중국이 주변국과의 갈등을 문화적 제재로 확장하는 패턴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사안이다. K팝은 이제 전 세계적인 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중국 시장은 여전히 거대하며 특정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문화 활동을 제한하거나 압박 도구로 삼아온 전례가 있다. 이번 사태는 그러한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표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다.
르세라핌은 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던 '스파게티' 팬 사인회를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했다. 주최 측은 “불가항력”이라는 표현만을 남겼지만, 시기적으로 중국 내부에서 ‘한일령’ 움직임이 포착된 상황에서 일본인 멤버가 포함된 점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같은 시기 클로즈유어아이즈의 팬 미팅에서는 일본인 멤버가 배제되었고, 인코드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팬 미팅은 행사 당일 새벽 전격 취소됐다. 모두 “예기치 못한 사유”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뒷면에는 중국이 문화 콘텐츠를 외교 도구처럼 활용하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이미 '한한령'을 통해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장기간 제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일령'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일본인이 포함된 한국 그룹에까지 압박이 확장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본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한국의 주요 산업이자 대표 문화 콘텐츠인 K팝이 외교 갈등의 부수적 피해를 반복적으로 떠안게 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국 아티스트들은 중국 활동이 갑작스럽게 취소되거나 제한되는 리스크를 늘 감수해야 하고, 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전반의 사업 구조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K팝 그룹 구성 특성상 일본인 멤버가 다수 활동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중국의 태도 변화는 단순한 일시적 불편이 아니라 구조적 위협이다.
중국이 정치적 갈등을 이유로 한·일·중 문화 콘텐츠를 선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은 한국의 산업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흔든다. 이는 중국의 문화정책이 시장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K팝은 글로벌 팬덤 기반, SNS 확산력, 공연 산업의 확장으로 더 이상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구조로 전환되어 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국이 행사 개최, 수익성, 팬덤 규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만큼 이번 사태는 무시할 수 없는 경고다.
한국이 이번 상황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중국의 문화 규제가 단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은 필요할 때마다 문화 산업을 외교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고, 그 대상이 한국이든 일본이든 관계없이 반복되는 패턴을 보였다. 오늘은 일본인 멤버가 있는 그룹을 제한하고, 내일은 한국 전체 공연을 막는 방식으로 언제든지 확대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재정검토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중국 시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번 사태는 그 시장이 얼마나 정치적 변동에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 연예 산업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중국 시장을 다시 열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으로 기반을 분산시키고, 특정 국가의 정치 상황에 예속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국의 문화 제재는 한국 콘텐츠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의 확장 가능성을 재확인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 사건은 중국과 일본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경고음이다. 정치적 갈등이 언제든지 산업 전반에 불똥으로 튈 수 있는 중국 시장의 특성을 직시해야 하며, 한국은 안정적인 글로벌 산업 기반을 위해 더욱 전략적인 대응과 다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중국의 불확실성은 사라지지 않으며, 그만큼 한국은 현실적이고 치밀한 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