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중국, 서해 해양조사 상습 방해…우리 해역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2025년 10월 5일 2: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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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중국, 서해 해양조사 상습 방해…우리 해역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심층분석] 중국, 서해 해양조사 상습 방해…우리 해역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연구선이 서해에서 과학 조사를 진행할 때마다 중국 해경이 접근해 조사 활동을 방해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5번 중 1번꼴로 중국이 우리 조사 활동을 제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이 사실상 중국의 영향권 아래로 기울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6년간 135건 중 27건 방해…상습적 간섭 드러나

KBS 단독 취재에 따르면 2020년부터 최근까지 6년간 서해에서 이뤄진 우리 측 해양조사 135건 중
무려 27건이 중국의 방해로 중단되거나 제한되었다. 즉, 조사 다섯 번 중 한 번꼴로 중국 해경이 개입한 셈이다.

특히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의 조사선이 19차례로 가장 많은 방해를 받았고, 국립수산과학원 4차례, 국립해양조사원 3차례로 뒤를 이었다. 올해 2월에는 우리 연구선이 중국이 무단 설치한 해상 구조물을 점검하려 하자, 중국 해경선 두 척이 근접 접근해 2시간 동안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외교부는 “정당한 해양권익 침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긴장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 중국의 의도는 “해양 지배권 과시”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행동이 단순한 오해나 경계 차원이 아니라, 명확한 전략적 목적을 가진 ‘영역 시위’라고 분석한다.

양희철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장은 “중국은 아직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수역에서 자신들이 ‘우선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상징적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중국은 서해를 단순한 어업 분쟁지대가 아니라, ‘자신들의 안보 완충지대’로 규정하고 통제권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해양조사 방해를 넘어, 한국의 과학 조사 주권과 해양 안보를 흔드는 행위다.

■ PMZ, ‘공동 관리 수역’의 허상

서해의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은 두 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겹치는 구역으로, 양국이 “협의 하에 관리”하기로 합의한 지역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명목상 공동 수역일 뿐, 중국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한국의 활동을 견제하는 구조로 변질됐다.

한국 해양연구선이 과학 조사나 수산자원 탐사를 진행하려면, 중국이 사전 통보나 허가를 요구하거나, 심지어 조사 장비를 철수시키라는 경고 방송을 하는 일도 있다.

중국이 반복적으로 ‘사실상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우리의 과학 연구와 수산 관리, 그리고 국가 안보 활동이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 “비례적 대응”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홍기원 의원은 “중국의 반복적 방해에 대해 비례적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장기적으로 PMZ 내 권리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 해경과 해양조사선은 장비나 규모 면에서 중국 해경보다 열세에 있으며, 해상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물리적 대응은 제한적이다.

정부는 “중국과 같은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교적 항의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해는 점차 중국의 영향권으로 고착될 위험이 크다.

■ 중국의 해양 팽창, 한국 안보의 새로운 도전

중국은 이미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과학 조사”라는 이름으로 군사적 해양 통제망을 구축해 왔다. 서해에서도 같은 전략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의 조사선 ‘샹양훙(向陽紅)’ 시리즈는 수온·염분·해류 데이터를 수집하는 장비를 한국 EEZ 인근에 상습적으로 투하하고, 심지어 무단으로 부표를 설치한 사례도 있다.

이 데이터들은 단순한 과학 자료가 아니라, 잠수함 작전 루트 설정과 해저 감시 체계 구축에 활용될 수 있는 군사적 자산이다. 즉, 중국의 서해 행보는 “유사시 해양작전 환경을 미리 구축하는 전초 작업”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한국의 대응 전략, ‘강경’보다 ‘지속적 감시’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반중(反中) 대응이 아니다. 중국의 해양 전략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장기 전략이 요구된다.

해양 감시 강화 – 위성, 드론, 해상 레이더를 통한 실시간 감시 체계 확립
국제 공조 – 일본, 필리핀 등 중국 해양활동으로 피해를 겪는 국가들과의 정보 공유
법적 대응 강화 – 국제해양법협약(UNCLOS)에 근거한 외교 채널 활용
자체 조사 역량 확대 – 해양과학기술원, 수산과학원 등 연구기관의 장비 현대화

한국이 서해에서 당당히 조사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 감시와 증거 축적을 통한 국제적 정당성 확보”가 핵심이다.

■ 중국의 ‘조사 방해’는 해양 데이터 전쟁의 서막

중국이 서해에서 반복적으로 우리 해양조사를 가로막는 것은 단순한 해상 충돌이 아니다. 이는 정보와 데이터, 그리고 주권의 전쟁이다. 서해는 더 이상 ‘공동 관리 수역’이 아니라, 중국의 해양 전략이 시험되는 전장이 되고 있다.

한국은 이 문제를 단기적 외교 분쟁이 아닌 장기적 안보 이슈로 인식해야 한다. 중국의 침묵 뒤에 숨어 있는 것은, 서해를 넘어 대한민국의 과학 주권과 해양 통제권을 흔드는 거대한 손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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