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중국 어선 불법 조업, 한국 해양 주권을 시험하는 조용한 압박


2025년 12월 17일 6: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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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중국 어선 불법 조업, 한국 해양 주권을 시험하는 조용한 압박

반복되는 중국 어선 불법 조업, 한국 해양 주권을 시험하는 조용한 압박

최근 전남 신안군 가거도 인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이 ‘어구 실명제’를 위반한 혐의로 나포되면서, 한국 해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규정 위반 사례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의 해양 주권과 수산업 질서를 지속적으로 흔들어 온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조업 허가를 받은 외국 어선은 명확한 조건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어구 실명제는 단순한 행정 규제가 아니라, 조업 주체를 명확히 하고 불법 조업을 예방하며 해양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어선이 어선명과 번호, 어구 일련번호조차 표시하지 않은 채 조업을 지속해 왔다는 사실은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관행화된 위반 가능성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러한 위반이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양경찰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다수의 중국 어선이 한국 배타적경제수역에서 나포됐고, 담보금 부과와 석방 조치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 조업이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정 수준의 제재를 감수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하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면, 이는 단순한 법 집행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인식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 어민들에게 이러한 상황은 생존의 문제로 직결된다. 중국 대형 어선의 무분별한 조업은 어족 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소규모 연안 어업에 의존하는 국내 어민들의 조업 환경을 악화시킨다. 어구 실명제가 지켜지지 않으면 유실 어구로 인한 해양 오염과 안전 사고 위험도 커진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어민과 연안 지역 사회에 돌아온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불법 조업이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해양 공간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배타적경제수역은 국제법상 명확히 보호받는 국가의 권리 영역이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규정을 무시한 채 조업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한국의 해양 관할권을 시험하는 행위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해양 주권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수산업 국가이며, 자국 연안의 어족 자원 고갈 문제를 오래전부터 겪어 왔다. 그 결과 중국 어선의 활동 범위는 점점 더 먼 바다로 확장되어 왔다. 이 과정에서 주변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이 지속적인 압박을 받는 구조가 형성됐다. 한국 해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국제 사회에서 해양 질서는 상호 존중과 규칙 준수를 전제로 유지된다. 한·중 간 어업 협정 역시 이러한 원칙 위에서 체결된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반복되는 위반 사례는 협정의 실효성과 상호 신뢰에 균열을 일으킨다. 신뢰가 흔들리면, 향후 어업 협상과 해양 협력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단순히 ‘중국 어선 몇 척의 불법 조업’으로 축소해 인식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양은 단순한 경제 공간이 아니라 안보, 환경, 식량, 지역 공동체가 복합적으로 얽힌 전략적 공간이다. 해양 질서가 느슨해질수록 그 부담은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 전체에 누적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불법 조업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구 실명제 위반은 단속이 없을 경우 쉽게 은폐될 수 있으며, 야간이나 기상 악화를 틈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는 단속 강화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며, 국제 협력과 지속적인 감시 체계가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 국민들 역시 이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해양에서 발생하는 일은 육지에서 체감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그 영향은 결국 식탁 물가, 지역 경제, 환경 안전으로 되돌아온다. 불법 조업이 반복될수록 국내 수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해양 생태계 회복 비용은 커진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 문제는 특정 사건 하나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 이는 장기간에 걸쳐 축적되어 온 구조적 문제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리와 경계가 필요한 영역이다. 감정적인 대응이나 단순한 비난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해양 주권과 질서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에서는 조용한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문제는 아니다. 반복되는 중국 어선의 규정 위반은 한국이 해양 국가로서 어떤 기준과 원칙을 지킬 것인지를 묻는 신호다. 이 신호를 가볍게 넘긴다면, 그 대가는 시간이 지난 뒤 더욱 크게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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