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어선 ‘비밀어창’ 조직적 설치 확인…한국 EEZ 침탈의 실태 드러나다
한국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벌어지는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동안 한국 해경은 중국 어선들이 선체 내부에 은밀한 저장 공간을 만들어 어획량을 숨긴다는 의혹을 조사해 왔지만, 최근 확보된 중국 현지 조선소 영상은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추정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전문 제작업체까지 등장하며 ‘비밀어창’이 하나의 산업처럼 구조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어업 질서와 경제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서귀포 해양경찰이 공개한 단속 영상에는 중국 어선 내부의 벽면을 밀자 숨겨진 문이 나타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문을 강제로 열자 내부에서는 물고기로 가득 찬 상자가 끝도 없이 쌓여 있었다. 이는 단순히 합판이나 천으로 임시 가림막을 설치하던 과거 방식과 달리, 아예 선체 자체를 개조해 비밀 저장 공간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조업 기술보다 탈법 기술이 앞서가는 실태를 드러낸다. 해경이 첫 첩보를 입수한 뒤 나포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린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구조적 은폐 방식 때문이다. 어선을 정밀 탐지해도 겉보기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 단속을 피하기 쉬운 형태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이 ‘비밀어창’을 만드는 목적은 명확하다. 양국 간 어업협정에 따라 한국 EEZ에서 조업할 수 있는 중국 어선의 어획량은 철저히 제한돼 있다. 정해진 한도를 넘기면 즉시 철수해야 하기에 일부 중국 어선들은 제한을 피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어획량을 은폐하는 방식을 고안해 왔다. 최근 확보된 중국 저장성 온령 지역의 해상 조선소 영상은 이러한 비밀 구조물이 단순한 자작식 개조가 아니라 전문 업체와 조선소가 함께 제작하는 ‘상품화된 탈법 장치’라는 점을 확인하는 결정적 증거다. 영상 속 중국 조선소 관계자는 비밀 공간과 유압식 전동문을 설명하며 “무조건 은밀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어선들이 단속을 전제로 설계되고 있다는 의미이며, 불법 조업이 개인 차원이 아니라 산업적 구조를 갖춘 ‘비밀 공급망’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특히 이번에 확인된 신종 수법은 한국 해경과 어업 당국에게 더 큰 경각심을 요구한다. 영상 속 중국 어선 바닥에는 기름 탱크로 이어지는 또 다른 출입구가 있었고, 실제 기름 대신 물고기를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이는 전통적 방식으로는 식별이 어려운 수준의 위장술이며, 단속 인력이 아무리 훈련돼 있어도 육안이나 일반 검사 방법으로는 발견이 쉽지 않다. 또한 기존 어창에 얼음이 가득 쌓여 있는 것처럼 꾸미고, 얼음 아래에 또 하나의 숨겨진 저장 공간을 만드는 등 다층적 구조로 이루어진 수법은 한국 EEZ를 장기간, 대규모로 훼손할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의 이러한 조직적 불법 조업은 단순한 어업 문제를 넘어 한국의 경제 주권과 해양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 한국 연안의 수산 자원은 이미 기후 변화와 남획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지역 어민들은 생계 불안과 소득 감소를 호소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중국 어선들이 은밀한 방식으로 한국 수역의 어장을 대규모로 훼손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어업인과 국내 수산업 전체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 중국 어선의 불법 어획량은 한국이 공들여 관리해 온 자원 회복 정책을 무력화시키며,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해양 생태계 균형 자체를 흔들 위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침탈이 반복될 경우 한국 EEZ의 실질적 관리 능력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해양 주권이 도전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번 사건은 중국이 주변국의 경제 수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불법을 감추기 위해 위장 구조물을 제작하는 전문 업체가 등장하고, 조선소가 이를 대규모로 제작하는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은 중국 내부에서 한국 EEZ에 대한 침탈 행위가 사실상 하나의 ‘이익 사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 차원의 허용 또는 방조가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주변국 주권을 침해해 얻는 이익이 중국 어선과 관련 업계의 경제 활동으로 굳어지고 있다면, 향후 한국뿐 아니라 일본·동남아 국가들도 비슷한 피해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YTN 보도를 계기로 한국 사회는 중국의 해양 불법 행위가 단순한 불법 조업을 넘어 구조적, 산업적, 그리고 전략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이 경제적 영향력뿐 아니라 해양 자원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주권이 얼마나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어민 보호와 수산 자원 관리, 해양 질서 유지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 안보 차원에서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 널리 확산돼야 한다.
중국의 ‘비밀어창’ 조업은 한국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구축해 온 해양 규범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행위이며, 장기적으로 한국의 해양 경제 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상 단속의 성공 여부를 넘어 한국 사회가 중국의 해양 전략적 행동을 정확히 이해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바다의 주권은 선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침탈의 기술이 진화하는 만큼, 경각심 또한 더욱 높아져야 한다. 한국 어민과 해양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의 조직적 불법 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와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