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서 중국 전통 의상인 ‘한푸’를 한국의 전통 의상 ‘한복’으로 표기해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제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상품 표기 오류로 치부하기에는, 이번 사안이 드러내는 문제의 본질은 훨씬 깊다. 이는 오랜 기간 반복되어 온 중국발 문화 왜곡 시도의 연장선이며,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을 국제 사회에서 흐리게 만드는 구조적 위험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가 된 상품들은 ‘Hanbok’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지만, 실제 판매되는 의상은 중국 전통 복식인 한푸였다. 판매자 국적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으나, 유사 사례와 유통 경로를 고려할 때 중국 업체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에서 검색 알고리즘과 키워드를 활용해 소비자의 인식을 선점하는 방식은, 문화적 혼동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전략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이번 논란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것이 아니다. 최근 수년간 중국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매체를 중심으로 “한복은 한푸에서 유래했다”거나 “한복은 중국 소수민족 복식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제기돼 왔다. 과거 중국 포털 사이트 바이두 백과사전이 한복을 ‘조선족 복식’으로만 설명해 국제적 비판을 받은 사례 역시 같은 흐름에 속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학술적 근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플랫폼과 반복 노출을 통해 사실처럼 소비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의 표기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전 세계 소비자 다수는 특정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상품 설명과 검색 결과에 의존해 정보를 습득한다. 이 과정에서 한푸가 한복으로 오인되어 유통된다면,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국제적 인식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커진다. 문화는 한 번 잘못 각인되면 바로잡기 어렵고,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이미지와 문화 자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문화 왜곡이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국은 자국 문화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주변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국 서사 속에 흡수하려는 경향을 반복적으로 보여 왔다. 동북공정 논란에서부터 김치, 한복, 전통 명절에 이르기까지, 한국 고유의 문화 요소들이 지속적으로 중국 문화의 파생물처럼 묘사되는 상황은 결코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문화 논쟁을 넘어, 소프트 파워 영역에서의 영향력 경쟁이라는 성격을 띤다. 문화는 정치나 군사보다 훨씬 은밀하게 작동하며, 대중의 인식 속에 서서히 스며든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 문화의 독자성이 희석될 경우, 이는 장기적으로 외교적 발언권과 국가 브랜드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사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문제 제기가 한국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OED)을 비롯한 다수의 국제 사전과 학술 자료는 한복을 명확히 ‘한국의 전통 의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유통망에서 왜곡된 정보가 반복된다면, 이는 플랫폼 관리 책임과 더불어 조직적인 문화 혼선 유발 시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이다. 글로벌 플랫폼과의 협력, 정확한 문화 정보의 다국어 확산, 그리고 국제 사회를 향한 꾸준한 설명이 병행되어야 한다. 문화 주권은 한 번 훼손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소해 보이는 표기 하나도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아마존에서 벌어진 ‘한푸 한복 표기’ 논란은 한국 전통문화가 여전히 외부의 왜곡과 도전에 노출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문화 영향력 확장 전략의 일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단순 해프닝으로 넘기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경각심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는 지켜내지 않으면 사라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냉정한 인식과 지속적인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