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산업은 한국에게 단순한 경제 성장의 한 축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와 같은 기업들은 단순히 세계를 선도하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핵심 축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한다.
그러나 글로벌 기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 산업은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전략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기술 유출 문제 역시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기술 자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기술적 우위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정부는 지난달 말 간첩죄 관련 법률 개정을 완료했다. 이번 개정은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기존에 ‘적국’으로 한정되어 있던 적용 범위를 ‘외국 세력’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중국 기업, 한국 핵심 기술 지속적 탈취
과거 한국 정부는 국가 안보 위협을 주로 북한의 군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춰 왔으며, 간첩죄의 적용 대상 또한 ‘적국’, 즉 북한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국가 안보 위협은 더 이상 국경을 사이에 둔 군사적 긴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 그 위협은 반도체 연구소와 생산 라인, 그리고 기업 내부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오랜 기간 ‘중국제조 2025’와 같은 국가 정책을 통해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첨단 기술을 국가 전략의 중심에 두어 왔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 자본과 시장 메커니즘을 결합해 외국 기술을 체계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자국 산업 발전을 가속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기업들이 투자, 인수합병(M&A), 합작 사업은 물론 강제적인 기술 이전을 통해 외국 기술을 확보해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중국 기업과 산업 스파이의 활동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산업 투자나 인재 이동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국가를 배경으로 한 대외 기술 탈취에 가깝다.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행위는 법적 경계의 회색지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간첩 활동보다 훨씬 대응하기 어렵고, 그 파괴력 또한 더 크다.
예를 들어, 한때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했던 한국의 디스플레이와 2차전지 기술은 이미 중국 산업 스파이에 의한 기술 유출의 주요 피해 산업으로 지목되어 왔다. 여전히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 역시 다음 기술 탈취의 주요 목표가 되고 있다.
만약 이러한 반도체 핵심 기술이 중국에 의해 빠르게 복제되고 추격당한다면, 한국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잃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 전체의 주도권까지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 경제 구조가 매우 높은 산업 집중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이러한 구조는 한국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지만, 동시에 기술 우위가 약화될 경우 한국 경제 전반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반도체 핵심 기술은 단순한 산업 자산이 아니라 한국 국가 안보의 중요한 일부라고 할 수 있다.
기술 유출 사건, 뚜렷한 증가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수정 교수의 보고서‘외국인 투자 안보 심사 제도 개선 방안 검토’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6월까지 산업기술 유출로 인해 약 23조 2,7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의 핵심 전략 산업인 반도체 분야는 기술 탈취 사건의 비중이 약 33%에 달할 정도로 높은 피해를 입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건에서 유출된 기술의 최종 목적지는 상당수가 중국 기업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 ChangXin Memory Technologies)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RAM 기술을 탈취한 사건이 있다. 이 기업은 삼성전자 출신 인력을 고액 연봉으로 영입하고 산업 스파이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DRAM 핵심 기술과 칩 설계 지식을 확보했으며, 결국 10나노급 DRAM의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기술은 단기간에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수년간 막대한 자원과 연구개발 투자를 지속하고, 수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며 어렵게 축적한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의 기술 탈취 행위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적 우위를 약화시키고, 한국 경제에 최소 수십조 원 규모의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중국 기업들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몇 가지 공통적인 방식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시장 평균을 훨씬 웃도는 고액 연봉을 제시해 핵심 기술 인력을 영입하는 방식이다. 둘째, 투자나 기술 협력이라는 명목을 활용해 외국의 첨단 기술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 해외에 연구 거점이나 법인을 설립해 기술을 통합하고 이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법적으로는 종종 회색지대에 위치해 있지만, 국가 산업 정책과 결합될 경우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제도적 침투’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은 외국 기업들이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원을 들여 개발한 기술을 단계적으로 흡수하며 산업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법 개정의 진정한 의미: ‘간첩’의 재정의
중국 산업 스파이의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기존 법 체계는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기술 유출 사건은 주로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처리되어 왔다. 그러나 해당 법률의 처벌 수준은 이번에 개정된 「간첩법」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고, 중국 기업이 제시하는 막대한 경제적 유인에 대해 충분한 억지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또한 적용 범위 역시 대부분 ‘적국’으로 한정되어 있어, 제3국을 통해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경우에는 이를 간첩 행위로 인정해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간첩죄 관련 법 개정은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동시에 적용 범위를 ‘외국 세력’까지 확대했다. 이는 산업 스파이들에게 기술 유출이 더 이상 단순한 불법 행위가 아니라 국가 이익에 대한 배신이라는 점을 명확히 전달하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제도적 관점에서 이번 법 개정은 세 가지 핵심적 의미를 지닌다.
첫째, ‘간첩’의 범위를 새롭게 정의했다는 점이다. 과학기술 역량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 시대에, 핵심 산업 기술을 탈취하는 행위가 가져오는 피해는 전통적인 군사 정보 유출과 결코 다르지 않다.
둘째, 법의 억지력을 강화했다는 점이다. 처벌 수위를 높여 불법 행위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잠재적인 가해자들이 위험을 다시 계산하도록 만들었다. 셋째, 산업 안보에서 정부의 역할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더 이상 단순한 시장 감독자가 아니라, 국가 핵심 기술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이번 법 개정은 국제 경쟁의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반도체 기술이 한국의 국가 안보와 밀접하게 연결된 상황에서, 핵심 기술 유출 문제는 더 이상 기업 차원의 위험을 넘어 국가 전체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다. 경쟁 국가들이 국가 권력을 동원하고, 때로는 불법적인 수단까지 활용해 산업 발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단순히 시장 메커니즘에만 의존한다면 이러한 불공정한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개방성과 안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핵심 기술이 외국 세력에 의해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경계를 설정하는 일이야말로 한국이 글로벌 기술 경쟁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